[공동성명―연명 제안]
같은 현실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다른 미래를 만들어갑시다
20대 대선을 마주하는 활동가들의 제안
20대 대통령 선거를 마주한 지금, 사회운동에 내리깔린 그림자는 유난히 짙습니다. 이번 선거를 지배하는 프레임은 ‘정권 교체’와 ‘정권 재창출’입니다. 문재인 정권의 실패는 ‘정권 교체’라는 프레임을 강화하는 요인입니다. 그러나 노동권 축소와 여성, 이주민에 대한 공격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국민의힘과 윤석열 후보가 이끄는 정부가 지난 5년보다 나을 리 없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시민사회의 일부 원로들은 '최악'을 막기 위해 민주당이라는 ‘차악’을 다시 선택할 것을 유도합니다. 이들은 민주당 정권을 ‘진보’ 혹은 ‘그래도 우리편’으로 묶어 사회운동의 혼돈을 부추길 뿐, 사회운동의 독자적 전망을 구축하고 재건하는 일에는 무관심합니다.
신자유주의 정치세력 민주당 정권의 민낯은 충분히 드러났습니다. 부동산 정책 실패로 자산 격차는 크게 벌어졌고,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더욱 크게 흔들렸습니다. 이번 정권의 책임 있는 인사들은 사모펀드 및 부동산 투기, 입시비리, 권력형 성폭력 등을 일으키고도 책임없는 자세로 일관했고, 민중들은 이들의 ‘내로남불’ 앞에서 절망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후보는 기득권 세력을 대변할 뿐, ‘차악’으로도 고려될 수 없습니다. 친자본과 정치실용주의를 서슴없이 내세우는 후보가 우리 사회를 보다 민주적이고 평등하게 만드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5년의 과오에 대해 제대로 된 반성 없이 촛불의 표상을 독점하려 시도하며, “촛불혁명의 연장”을 운운하는 것은 사회운동에 대한 기만일 뿐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보정당들의 부침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진보정당운동은 단지 분열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운동을 조직화·세력화하지 못했기에 후퇴해왔습니다. 체제를 넘어서는 전망을 제시하기 위한 정치적 힘을 사회운동과 함께 만들기보다, 사회운동을 동원의 대상으로 여겼던 것은 아닌지 진보정당에 묻고 싶습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민중경선’이 실패한 이유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현장의 목소리로부터 정치적 힘을 조직하기 위한 일상적인 노력 없이 단순히 누구를 지지할 것인지 정하는 방식으로는 정치세력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사회운동에 몸 담고 있는 많은 활동가들은 부단히 현실의 모순에 저항하고 대안을 만들기 위해 힘써 왔습니다. 그러나 작금의 현실을 마주한 사회운동의 책임이 가볍지만은 않습니다. 사회운동은 당면한 투쟁들에 그때그때 대응하는 일을 넘어 대안과 전망을 부상시키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제도권과의 분별을 불명확하게 하고, 개인의 제도 진출을 실용적이고 사적인 문제로 여기는 분위기가 커지면서 사회운동의 자산을 유실하기도 했습니다. 5년 혹은 10년 후 오늘의 참담함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꽤나 긴 시간 사회운동을 날카롭고 풍부하게 다듬어야 합니다.
이번 대선 이후에도 우리의 삶과 투쟁은 이어질 것입니다. 선거가 억압적인 시스템을 포장하는 껍질이 되느냐, 사회운동이 자신의 요구를 대중적으로 분출하고 또 대중들의 요구가 모이는 정치적 공간이 되느냐의 문제는 구체적인 정세에 대한 우리의 분석과 실천에 달려있습니다. 한국 사회가 직면한 상황 자체를 바꾸지 못하면, 우리는 이보다 더 최악의 선거를 맞이하게 될 수 있습니다. 제도 정치와 선거에 대한 환멸감을 넘어 이 공간에 보다 능동적으로 개입해야만 체제 전환을 위한 사회운동 역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사회운동의 성장은 곧 우리 사회가 마주한 오늘의 착취에 맞선 저항과 대안의 가능성을 높입니다.
후퇴할 수도, 외면할 수도, 기만할 수도 없는 난처하고도 비상한 현실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이 현실을 직시하며, 최소한 세 가지를 함께 다짐할 것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첫째, 같은 미래를 반복해선 안 됩니다. 반MB, 반박근혜 전선 등과 같은 함정에 함몰되거나, 최악 대신 차악을 선택해야 한다는 으름장에 속지 맙시다. 정권의 폭력과 탄압에 맞서 저항하는 것은 사회운동의 당연한 책무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기득권 정당 중 한 쪽과 공동 전선을 만드는 대신, 우리 자신의 대안을 만들고 세력화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둘째, 제도 개혁을 넘어선 체제 전환을 정치적 목표로 삼읍시다. ‘진보세력’이라는 이름으로 한무더기 취급당하지 않으려면, ‘조금 더 진보적인’ 길이 아니라 다른 길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민주당 정부에 일말의 기대를 갖고 참여했던 과오를 반복하지 않아야 합니다.
셋째, 미래의 꿈과 목표가 있는 운동은 결코 위축되지 않습니다. 그 꿈을 포기하지도 누군가에게 의탁하지도 맙시다. 우리 앞의 5년 다가오는 10년, 우리가 전선과 구도를 만들고, 능동적으로 개입하는 미래를 조직합시다. 운동 바깥의 대중을 적극적으로 만나고, 운동의 목소리를 대중화하는 사업을 함께 기획합시다. 우리가 함께 모여 만들어 나갑시다.
2022년 3월 4일
연명 참가자 일동 |